브네이 바루흐

가슴을 열고 한 유명한 물음에 귀 기울여 보라. 장담하건대 “카발라를 배워야 하는가?”라는 의혹은 털끝 만큼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당연히 솟아 오르는 그 물음,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이들이 던지는 그 물음, 그것은 바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이다.

-랍비 예후다 아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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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삶이란 가장 하위의 수준이자 가장 이기적 수준의 생존과 어울어져온 존재의 한 형태이다. 우리 영혼들이 이 세상으로 하강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상태로 다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바로 삶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기 이전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상태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고귀하고도 가장 완전한 상태로 여겨진다.

이를 성취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육체적 삶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수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적지 않은 생을 거듭한 후에야 그 상태에 이르며 매

생마다 어느 정도 교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 수준의 진보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오직 가장 마지막의 한, 두 생에 와서야만 영적 발전은 의식적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이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며, 얼마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는지 알 수 없다. 이를 밝혀낼 수 있는 점쟁이는 없다. 그러나 카발리스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영적 발전을 멈출 것을 우려하여 이를 허용치 않는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오직 자신의 계산에 따라 행동할 것이며 이는 이기주의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카발리스트들이 그러한 활동을 금지하는 이유이다.

영적인 길이란 이타적 욕구들을 계발하는 체계이다.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안다는 것은 완전히 이기적인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영적 진보를 "지식 너머의 믿음" 이라고 정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카발리스트가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카발리스트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나, 이는 자신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영적 발전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예언과 같은 것으로 실험하지 말라. 지식 너머의 믿음을 가지고 이타주의의 계발에 그저 노력을 쏟으라.

 

-미하엘 라이트만 박사의 카발라의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