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bbalah.info - Kabbalah Education and Research Institute

거꾸로 된 세상을 보았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는가? 그 현실은 우리 없이도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 내면의 본질에 따라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창조물인가? 현실이란 우리가 보는 주위의 모든 것을 의미함은 아주 분명해 보인다. 집, 사람, 우주 전체…현실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혹은 그렇지 않나?

아침이다. 당신은 눈을 뜨고 기지개를 편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고, 햇살은 눈 부시게 빛나며, 새들도 즐겁게 지저귄다. 그런데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 잘못된 것같은 느낌이 든다. 아침부터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잠자리에서 일어 나고픈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그렇지만 당신은 어제는 완벽한 하루였던 것을 기억한다. 어제는 잠에서 깬 순간부터 멋진 하루가 될 것임을 알았고, 하루종일 모든 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오늘, 당신은 침대에서 나오는 자체가 싫은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사이 무엇이 바뀌었는가? 현실이 바뀌었는가? 아니면 당신이 변했는가?

카발라에 따르면 이 세상이라는 풍경은 사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상”이란 인간이 느끼는 어떤 현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떤 사람의 내면의 본질이 그의 외부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힘, 즉 자연의 힘의 본질과 대등한 정도를 반영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자연의 힘이란 무엇인가? 카발리스트들에 따르면 그것은  절대적 사랑과 베품이라는 본질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들은 인간이 인지하는 “세상”이란 바로 인간의 본질과 자연의 본질 사이의 균형의 정도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라디오 수신기를 예로 들어보자. 라디오 방송국들은 끊임없이 방송을 내 보내고 있지만 어떤 주파수에 라디오를 맞추어만 우리는 그 방송을 들을 수 있다. 라디오 수신기는 어떻게 방송을 “잡을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라디오 수신기가 그 외부의 대기 중에 있는 소리파와 동일한 내부 주파수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즉, 라디오 수신기는 그 내부의 주파수를 바꾼 후에야 비로소 방송을 “잡을 수” 있었지만, 사실 소리파는 항상 존재하고 있었다. 카발리스트들은 우리가 이와 똑 같은 방법으로, 다시 말해 우리 내부에서 발생시키는 “주파수”에 따라서 우리 외부의 현실을 인지한다고 설명한다. 이는 우리를 둘러 싼 외부의 현실은 우리 내부의 본질에 완전히 의존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오직 우리 자신들만이 그 현실을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진정한 삶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현실을 인지하는 법을 이해하기 위해 사람을 다섯 개의 “구멍” - 눈, 코, 입, 귀, 손- 을 가진 상자라고 가정해 보자. 이 기관들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우리의 오감을 대표하며, 우리는 이 오감을 통해 현실을 인지한다. 어느 정도까지 소리를 듣고, 어떤 색을 볼 수 있는지 등은 우리 감각의 인지에 완전히 좌우된다.

우리의 청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예로 들어 보자. 먼저 고막 바로 곁에 모인 음파는 진동을 유도하고, 그 고막의 진동으로 중이 속의 뼈가 움직이게 되며, 그 결과 신호가 뇌에 전달되면 뇌는 그것을 소리나 목소리로 해석한다. 이것이 우리가 듣는 법이다. 즉, 모든 청각 과정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고, 또한 다른 모든 감각들도 같은 식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감각들을 통해 도착하는 신호들은 뇌의 조절 중추 부위로 가고, 거기서 이미 우리 기억에 존재하는 정보와 새로 들어온 정보가 비교된다. 그 비교를 토대로 이제 우리 뇌는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풍경을 묘사한다. 이 과정으로 인해 우리는 마치 어떤 특정한 “곳”에 살고 있듯이 느낀다. 비록 그 “곳”은 사실 우리 안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인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외부의 무엇이 아니라, 단지 외부의 자극에 대한 우리 내부의 반응이다. 우리는 “상자 안에 갇혀 있으므로” 그 밖에 존재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알 도리가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그림은 우리 감각들과 뇌에 존재하는 정보의 구조의 산물이다. 과학은 수 년 전에 인간의 뇌를 전기적으로 자극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어떤 장소와 상황에 처해 있듯이 느끼도록 만들 수 있음을 발견했다.

사실 자연 과학자들은 이미 동물의 종류에 따라 세상을 인지하는 법이 다름을 알고 있다. 고양이는 어두운 곳에서 우리보다 6배나 더 잘 볼 수 있고, 개의 청각은 우리보다 훨씬 민감하고 정확하다. 개는 사람이 어떤 소리를 듣기 훨씬 전에 이미 그 소리를 듣는다. 인간의 눈은 보라와 빨강 사이 라는 파장에 맞춰져 있기에 우리는 자외선과 같이 보라색보다 짧은 파장을 볼 수가 없다. 우리와 달리 벌들은 자외선을 인지할 수 있어서, 그것을 여러 종류의 꽃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사용한다. 이런 예들은 인간에게 다른 감각들이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그림의 현실을 인지 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모든 것은 꿈에 불과하다

인간은 두가지 수준의 내면의 본질에 의존하여 현실을 인지 할 수 있다고 카발리스트들은 설명한다.

첫번째 수준에서 인간의 내면의 본질은 “이기주의”인데 이것은 자연의 본질에 정반대 된다. 이 “이기주의”라는 본질은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으며, 우리를 다른 이들로부터 분리 된 듯 느끼에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도록 부추기기까지 한다. 또한 우리가 현실을 전쟁, 투쟁, 빈곤과 부패로 인식하는 것도 이 “이기주의” 때문이다.

그러나 삶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이기주의적 인식으로는 진정한 만족에 이를 수 없음을 배웠다. 우리가 이기주의적으로 현실을 감지한다면 지속적으로 즐거움을 경험하기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더 높은 수준에서의 우리 내면의 본질은 자연의 힘과 동일한 절대적 사랑과 베품이다. 세상을 이런 방법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모든 이들이 상호 작용 속에서 일하며, 끊임없는 즐거움의 사회를 창조하는 가운데  하나의 체계 속에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해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카발라에 따르면 첫번째 수준에 기반을 둔 삶은 단지 우리가 지나치는 단계에 불과하며, 그 이기주의적 삶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 스스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도록 하는 데 있다. 현실에 대한 지각을 바꾸는 법을 배운 카발리스트들은 우리 현재의 실존을 “상상의 삶” 혹은 “상상의 현실”이라고 정의한다. 그와 반대로 교정된, 전체적이고 완전한 실존을 “실체의 삶” 혹은 “진정한 현실” 이라고 부른다. 또한 그들은 이전의 이기주의적 인식을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마치 꿈과 같다고 묘사한다.

이것은 곧 현재 상태에서 참된 현실은 우리로부터 감춰져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 전체를 현재의 이기주의적 관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 진정한 현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상호 작용 관계를 거부하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는 상상키조차 어렵다. 우리 안에 새겨져있는 이기주의적 욕망은 그런 연결에 전혀 관심이 없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에 대한 참된 사진을 볼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의 이기주의를 자연이 가진 본질과 같은 사랑과 베품으로 전도시킬 수 있다면, 예전에는 알아채지 못했던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완전히 다른 것들을 느끼고 지각 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전에 보았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것이다. 완전하고, 영원하며, 의미있는 그런 것들로 말이다. 카발리스트들은 이것을 일컬어 “거꾸로 된 세상을 보았다” 라고 묘사한다.

직접 보고 느끼라

우리 삶의 목적은 우리가 현재 처한 제한된 실체에서 영원하고 참된 실체로 자발적으로 올라가기 위함이라고 카발라의 지혜는 가르친다.

어떻게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가? 이기주의적 인식을 깰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은 그 “이기주의”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에 접속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정격의 카발라 서적이 필요한데, 그것은 참된 현실의 사진을 발견한 이들에 의해 씌여졌기 때문이다. 그 같은 책에서 카발리스트들은 사실상 우리 눈 앞에 존재하는 완벽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의 방송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저 우리 내부의 주파수를 바꾸어야 할 뿐이다.

참된 현실에 대해 더 읽으면 읽을 수록, 우리 감각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가 걷히면서 우리는 그 현실을 실제로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실상 책의 본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카발리스트들은 설명한다. 우리가 읽는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문제없다. 다만 그것을 이해하려는 욕구가 강하고, 진실하다면 그 참된 현실의 높이에 다가설 수 있음을 카발리스트들은 강조한다.

“비록 그들이 공부하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려는 열망과 대망을 통해서 그들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빛을 끌어 당긴다. “

랍비 예후다 아쉴락

현재 우리가 느끼는 삶과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조하르(Zohar)는 그 차이를 작은 촛불 빛과  무한한 빛, 혹은 한 줌의 모래와 세상 전부 등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진실로 알고 싶다면 직접 보고 느끼라고 카발리스트들은 권유한다

 

공유하기


고대의 지혜 카발라: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한 길잡이

korean-book-157x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