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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기초 개요1

 

안녕하세요, ‘카발라가 밝혀내었다’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저는 토니 코즈넥입니다. 저는 라브 미하엘 라이트만 박사의 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박사는 랍비 예후다 아쉴락의 수 제자이자 그의 아들이었던 랍비 바루흐 샬롬 하레비 아쉴락의 수 제자입니다. 랍비 예후다 아쉴락은 바알  하술람, “사다리의 주인”으로 더 잘 알려있으며,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굴지의  카발리스트로 인정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인물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이유는 카발라에는 가르침의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우리가 다루게 될 것은 정격의 카발라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들에게 학자가 아니라, 수행자의 관점을 제공합니다. 카발리스트라는 사람들의 관점이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은 정격의 카발라에 관한 개요는 물론이고, 이 지혜에 접근하는 방법과 기초 개념들이라는 열쇠를 얻어 그 지혜의 문이 여러분들께 열릴 것입니다. 카발라의 지혜는 사물에 대한 우리들의 일반적 감각과는 아주 다른 학습 방식, 사고 방식, 그리고 느낌의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기술이 그렇듯, 이 지혜는 기초에 대한 마스터리가 필요합니다. 스무편의 수업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들이 알아두어야 할 근본원리를 모두 다룰 것입니다.

  카발라에 대한 개요에서 시작을 하는 이유는 그에 대한 혼란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가면 카발라에 관한 정보가 엄청 많지요. 제 생각에는 아마 매년 천 권 정도의 책이 출판되나, 그 가운데 카발라와 상관이 있는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그 책들은 사람들이 카발라라고 생각하는 것, 카발라가 틀림없다는 사람들의 상상, 그 사람들의 육감, 상상의 뒤범벅에 불과하며, 이는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카발라가 진정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거대한 갈망이 존재하는 이유는 카발라가 중요하고, 강력하며, 이 세상에 감춰져있는 무엇인가를 카발라가 붙잡고 있다는 느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카발라가 “숨겨진 과학”이라고 불리는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카발라는 그 수행자들 스스로가, 즉 카발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숨겨왔습니다. 카발라는 사천년 전에, 1947-1948 BCE(서력 기원 이전) 쯤에 아브라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기에서 –이천년- 두번째 신전의 붕괴가 있었던 서력 기원 초기까지 카발라는 숨겨지지 않았고, 널리 학습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텐트 앞문에 앉아서 여행자들을 환영하며 접대를 했다는 이야기를 아시지요. 사실 그가 실제로 한 일은 여행자들을 접대하며 카발라의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그 당시 이 세상에 살았던 영혼들의 유형은 지금의 영혼들 보다 좀 더 정교했기에 그들은 카발라를 더 자연스럽게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서력 기원 초기, 신전의 붕괴 시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로인해 그 세대는 물론 그 이후 이천년 동안 사람들은 카발라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해 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들이 출현한 시점이지요; 인간 내면과 인간 발달에서 앞서 가려는 어떤 특정 원칙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우주란 무엇이며, 창조주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사고가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자라갔지요. 사람들 내면의 이런 자질이 이해를 가로막았기에 카발리스트들은 카발라를 숨기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에 접근할 길이 없다고 해도 책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문제는 카발라 서적들은 읽는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매우 특별한 언어로 씌여져 있기 때문에 또한 숨겨진 지혜라고 불린다는 것이지요. 모든 카발라 서적들은 “가지(브랜취)의 언어”라고 불리는 언어로 저술되었고, 그 책들은 대상, 컵, 책, 탁자, 가족, 여행, 전쟁 처럼 우리 세상의 단어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모세의 다섯권의 책과 다른 모든 카발라 서적들에서 볼 수 있지만, 사실상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어떤 카발라 책 속의 한 단어도 이 세상의 무엇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창조하고 지탱하는 상위의 힘에 대해 오직 언급할 뿐입니다.   

 카발리스트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다루고 있는 것을 암시하는 특정 언어를 사용하였고, 어느 정도의 지혜를 습득한 학습자만이 그런 식으로 듣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원인의 세상이 아니라 결과의 세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도 상위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상위 세계에 우리의 근원이 존재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들의 뿌리가 있는 곳이 거기입니다. 어떤 물리적 행위도 그에 영향을 못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어떤 것도 그 결과에 영향이 없는 이유입니다. 오직 뿌리에, 모든 것의 원인적 수준에 접속함으로써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고, 이것을 카발라가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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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로서의 우리 현실은 말하자면 상위에 존재하는 세계와 하위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식으로 구조되어 있습니다. 가지(브랜취)의 언어는 하위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가족”이라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토라” 속에서 여러분들은 그것을 읽을 것입니다. “토라”는 유대인들에 관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말하자면, 한 가족이 “어떤 땅”이라 불리는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지만, 카발리스트들이 의미하는 것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을 창조하고  그것을 유발시키는 상위의 추상적인 힘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오직 현명한 학습자만이 여기서 실제로 다루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지 수준이고, 이것이 뿌리 수준입니다. “가지(브랜취)의 언어”라 불리는 이 언어에 대한 기호표를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모든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카발라의 숨겨짐에 대한 이 같은 두가지 관점의 결과에 덧붙여 가르침의 선과 참다운 방법론과의 접속 결여가 있었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알 필요가 있었지만 상상해야만 했지요. 그들은 여러가지를 혼합할 수 밖에 없었고 카발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내적 자질과 올바른 가르침 없이,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만을 따랐던 것입니다.    

 수 많은 미신들이 생겨왔고, 이에 관해서는 또 다른 카발라의 기초 개념들을 이야기할 때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저 몇가지 주요 미신들을 살펴보자면, 먼저 카발라가 유대교의 신비주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은 종교도 신비주의도 아닙니다. 카발라가 종교보다 먼저지요. 종교는 상위의 힘과의 단절, 추측, 카발라에 대한 오해의 현상입니다. 비록 종교가 카발라와 동의성을 가지지만, 그것은 카발리스트들이 할라카(Halacha )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성서라고 간주하고 공부하는 책들을 창조했지요. 우리들의 전통 등이 그 책들에서 비롯되지만, 그 목적, 그 의미, 책이 실제로 저술된 이유와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들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카발라와 유대교와의 관계는 기억 상실과 같습니다.

 신비주의에 관해 말하자면, 카발라는 과학이지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우리가 현재 상태에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법적이고 심오하기 그지없게 보이는 것들과 직접적 연결을 맺는 방식이 바로 카발라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과학 기술도 본적이 없는 사막의 섬에 사는 부족에게 라이터를 가지고 오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불의 신으로 대우받겠지요, 손바닥에서 불을 뿜어 낼 수 있는 어떤 신비한 존재말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추어져 있는 것과 드러나 있는 것의 차이입니다.    

 카발라가 마법이라구요? 글쎄요, 마법이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리고 당신의 이득 혹은 타인의 불리함을 위한 어떤 결과를 야기시킬 목적으로 사람들을 교묘히 조종하기 위해 숨겨진 상위의 힘을 이용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내면의 도덕적인 본성을 변화시키지 않는한 상위의 힘과 어떤 접속을 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카발라에서 달성하는 것은 내적 변화의 문제이고 그것 없이는 어떤 힘에도 연결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카발라가 마법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의 생생한 상상에 불과합니다 .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카발라를 공부할 수 있고 학습자가 유대인이어야 한다는 조건 등이 존재한다는 오해도 있지요. 이것이 사실이 아닌 이유는 카발리스트들은 지금껏 태생이 유대인이 아니었던 사람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입니다. 랍비 아키바 등등과 같이 위대한 카발리스트들 가운데 몇명은 사실상 다른 국가의 사람들인  비유대인이었지요. 모든 카발리스트들은 어떤 종류의 육체적 속성이 아닌 “예후드”라고 일컬어지는 내적 속성을 기본으로 학습자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예후드”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또하나는 카발라를 공부하기에 앞서서 그마라, 미쉬나 등등의 예비적 지혜를 마스터했어야 한다는 오해지요. 토라 혹은 그마라에 씌여진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카발라 또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 같은 예비적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 이 같은 예비적 지혜에서 영성을 찾을 수 없다면 영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서적들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토라에 적힌 언어나 하가다 등등과 같은 이야기식 언어가 그러하듯 이 세상의 일을 다루는 것처럼 오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적과 보호, 그리고 문자와 숫자 조작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한다…글쎄요, 이것은 카발라가 다루는 것과 완벽히, 또 전적으로 반대가 됩니다. 사실상, 그것은 완전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기적이고 개인적 이유로 상위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맹목적 숭배로 간주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두려워 보호받아야 할  무엇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수, 부적, 붉은 실 등은 심리적인 것이지 카발라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카발라와 동양의 종교와의 혼합이 있지요. 우리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영성을 개방적으로 다루는 힌두교나 불교와 관련시켰습니다. 이는 오직 카발리스트들의 책에서는 영성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1995년으로 카발라에 관한 모든 서적들이 개방되었습니다. 유일한 요구조건은, 학습자로 받아들여지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추구하면서 카발라를 대할 때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낀다고 할 때, 유일한 요구조건이라면 당신의 카발라에 대한 필요입니다.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와  삶의 의미 및 그 안에서 우리들의 역할 등에 대한 해답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도 구해질 수 없다면, 그것이 바로 필요조건입니다. 모든 위대한 카발리스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아리의 시대 이후로  이 욕구만이 유일한 필요조건이라고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카발리스트이자 예루살렘의 랍비 장이었던 라브 쿡은 누가 카발라를 공부할 수 있냐는 질문에 모든 사람들이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사실과 틀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인데, 카발라를 공부하면 미쳐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가 선호하는 이유는 다른 모든 것들이 그렇듯,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죠. 카발라에서 무언가를 달성하고, 현실을 이해하고 그에 연결되는 결과로 다양한 내적인 변화를 겪게 되고, 그 때 얻는 기쁨은, 그 기쁨의 근원은 일반적 사고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반대인 이유는 영적 세계 속에 존재하는 사고의 종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목표에 반대되는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카발라가 “숨겨진 과학”이라고 불리는 세번째 이유는 그것이 우리 오감으로부터 감추어져 있는 것에 대해 다루기 때문입니다. 카발라는다른 곳에서 해답을 줄 수 없는 물음에 답합니다. 기본적으로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것에 답을 하지요. 이것은 심오하고 심각한 물음일 수 밖에 없지요. 이 물음을 가진 사람은 전통이 말하는 것에서도, 과학이 진술하는 것에서도, 예술과 문학이 묘사하는 것에서도, 심리학이 설명하는 것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것에서도 만족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오감 너머의 것을 감지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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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발라 서적은 우리가 전체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현실의 전체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거기서 우리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완전히 제한된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제한성이 어찌나 큰지 우리 인생의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조차 모르지요. 왜 일들이 발생하고, 언제 발생하고, 우리가 어디서 왔고,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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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하고 전체적인 현실이 존재하며 이 현실은  “세계들”이라 불리는 한 체계로 분리되고 축소되었습니다. 다섯 세계에 의하여, 완벽한 현실-끝없는 빛-이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밝기로 줄여졌지요. 이 첫번째 세계는 “아담 카드몬의 세계”라고 불리고, 그 다음 세계는 “아찔룻”, 그 다음은 “베리아”, 그 다음은 “예찌라”, 그리고는 “아씨아”라 불립니다. 이 세계들을 의식의 수준으로 생각해도 됩니다. 이 완전한 현실 및 그에 대한 자각과 연결로부터 하강함에 따른 가깝고 먼 거리감이지요. 그러다 우리는 마침내 “마흐솜” 혹은 “장벽”(마흐솜은 히브루어로 장벽이란 뜻입니다)이라 불리는 단절점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영적 세계들입니다. 이 장벽 아래로는 우리 세상입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고 우리의 근원지인 영적 세계에 대한 느낌이 우리에겐 전혀 없습니다 . 여기서 우리들은 “육체적” 혹은 “물질적”이라 불리는 한정된 느낌을 가집니다. 이 완벽한 빛과 전체 현실에 있어서는요. 우리가 이에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면,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고, 우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를 안내하는 힘을 이해하게 되어서, 삶을 최대한으로, 모든 생명의 이로움을 위해 사는 것이 가능해지는 정도로 그 힘에 연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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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카발라 자체가 숨겨져 왔던 것처럼, 이 힘, 이 완벽한 현실도 고의로 감추어져 왔으며, 이 세상까지 125 단계라는 거리를 둔 체계를 통해 축소되어 있습니다. 카발라는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으로 하강한 125 단계를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지요. 우리의 근원지인 영적 세계 속의 우리의 뿌리로, 전체 현실과의 연결됨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우리가 이것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서,  “창조주”라고 불리는 이 자비로운 힘이 우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이 체계를 창조했던 것이죠. 즉, 이 창조의 지도는 창조의 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 점입니다; 그 과정을 보면, 영적인 세계 속의 우리의 근원에서 현존의 상태까지 우리가 하강했고, 이는 창조의 계획을 실행하여 이 전체 현실과 재결합하기 위한 것입니다. 

 토라, 미쉬나, 그마라를 포함한 모든 카발라 책은 이들 단계들에서 발견된 상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이 완벽한 연결에서 떨어졌기에 생겨난 축소 과정 및 우리가 되올라 갈 길을 찾는 상황들을 말하죠. 카발라의 연구법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 세계를 감지하고 그 영역에 들어서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고, 무엇이 우리를 이 곳에 들어서지 못하게 막으며, 어떻게 다시 영성을 얻을 수 있는지 배울 필요가 있지요. 이를 위해서 매우 특별한 교재, 우리를 영적 세계로 들여보내 줄  목적 하에 직접적으로 창조된 그런 교재가 필요합니다.

 카발라 서적들은 브랜취의 언어로 저술되어 있어 우리가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큽니다. 이 상위의 현실에 들어설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이 서적들을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카발라가 주는 커다란 선물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 세대, 즉 카발라의 지혜가 전 세계에 그것을 진정으로 필요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1995년 이래, 특별한 책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이 책들은 바알 하술람과 그의 아들이자 제자인 라바쉬에 의해 저술되었는데요, 이는 이미 영적 세계에 존재하는 카발리스트들을 위해 저술된 것이 아닙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씌여진 책들이지요. 이 책들은 우리가 영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기반을 마련해줄 특별한 언어로 저술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수업에 필요한 자료의 원본을 가져올 곳이 바로 이들 서적들입니다. 우리를 영적 세계 밖에 머물게 만드는 자질은 무엇이며, 우리를 영적 세계에 들어서게 하는 자질은 또 무엇인지 알아보고, 바알 하술람의 업적을 통해 카발라 과학에서 가르쳐주는 연구법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카발라의 지혜는 상위 세계와 우리 실존의 근원에 이르는 실질적 방법을 가르쳐준다. 진정한 우리 삶의 목적을 깨달음으로써, 인간은 완벽함, 평화로움, 무한한 즐거움을 얻으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초월하는 능력도 습득하게 된다. –라브 미하엘 라이트만 박사

다음주에도 우리와 함께 이 흥미로운 여정에 동참하세요.

     수업에서 다루는 것은? (What is in this lesson)

  • 카발라가 “숨겨진 과학”이라고 불리는 3가지 이유
  1. 카발리스트들에 의한 고의적인 은폐
  2. 카발리스트들이 “가지(브랜취)의 언어”라는 특별한 언어로 텍스트를 저술하였음.
  3. 카발라는 우리 천성적 인식으로부터 감추어진 것을 연구함. 
  • 가장 대중적인 카발라에 관한 11가지 허위 진술과 이것이 진실한 카발라가 아닌 이유
  • 유대교의 신비주의
  • 종교
  • 신비주의
  • 마법
  • 카발라를 공부하려면 유대인이어야 함
  • 카발라 공부전에 예비적 지혜를 마스터했어야 함
  • 성수
  • 부적
  • 붉은 실
  • 보호를 위한 수단
  • 동양의 가르침과 동일함
  •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진실된 욕구만이 카발라 공부를 위한 유일한 필요조건임
  • 카발라는 우리 삶과 우리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어떻게 우리 삶의 근원인 전체 현실에 연결되는 것이 가능한지를 연구함
  • 주목하세요:  “당신의 첫 카발라 코스”시리즈 전체를 공부하셨다면, 카발라 TV에서 이 비디오 수업을 계속하실 수 있습니다. 페이지의 오른 쪽에 있는 카테고리 가운데 “카발라가 밝혀내었다-풀”이라는 타이틀로 가셔서 “장막”이라는 6번에서 시작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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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지혜 카발라: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한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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