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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란?

Kabbalah has been clouded in confusion, legend, myth, and misrepresentation because authentic Kabbalah has been hidden for thousands of years... until today

카발라의 본질과 목적

  • 카발라의 본질은 무엇인가?
  • 카발라는 이 세상의 삶, 아니면 저 세상의 삶에 목적을 두고 있는가?
  • 카발라의 혜택을 받는 것은 창조주인가, 혹은 피조물들인가?

창조주에 도달한 카발리스트들은 ‘그’는 지극히 사려 깊다고 느낀다. 창조주에게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한 의지이자, 모든 불쾌한 감정의 원인이 되는 이기주의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에게도 사소한 고통조차 야기시킬 수 없다고 카발리스트들은 설명한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한 우리들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단호한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 만약 이런 감정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았더라면 이 세상에 악의 근원이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창조주를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전적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에 ‘그’의 안에 ‘얻으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은 ‘그’의 안에 어떤 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각자는 우리를 행복, 기쁨, 그리고 만족의 순간들로 꽉 채워주는 창조주를 지극히 사려 깊은 듯이 느껴질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이 ‘그’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의 모든 피조물들 또한 오직 선과 호의만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대신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전체 자연은 무생물적, 식물적, 생물적, 그리고 인간적 수준이라는 네가지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수준은 천천히 점진적으로 원인과 결과에 따른 성장, 즉 목적을 지닌 진화를 거쳐간다. 이것은 나무에 자라는 어떤 과일이 오직 마지막 숙성 시기에 와서야 맛있어 보이고 먹을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 과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성장하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중간 단계를 거치는가? 그 중간 과정에서 그 과일이 부드럽고 달콤해지는 마지막 상태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 반대다.  끝에 와서 과일이 부드럽고 맛있게 익을 수록 그 익는 과정에서 과일은 씁고 단단하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어난지 하루된 송아지는 완전히 성장한 황소의 고유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 다음 말 그대로 송아지는 발달하기를 멈춘다. 인간은 이와 정반대로 전성기의 삶에서는 지성을 갖추게 되지만 생애의 처음 몇 년 동안은 무력하고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 차이는 너무도 현저해서 우리 세상의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이 갓난 아기와 새끼 송아지를 보았다면 인간의 아기에서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고, 그에 반해 송아지는 자라서 최소한 새 나폴레옹 정도는 될 것이라고 결론 짓고 말 것이다.

원칙적으로 중간 상태는 마지막 성과에 정반대된다. 그러므로 오직 마지막 성과를 아는 사람만이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어떤 대상의 매력없는 외형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마지막 결과를 예견 못한 채 그릇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상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 창조주의 방법에는 목적이 있으며 오직 성장의 최후에 가서야 그것이 명확해진다. 우리를 향한 ‘그’의 사고 방식에서 창조주는 악의 흔적도 없는 “절대선”의 원칙에 의해 인도 될 뿐만 아니라, ‘그’의 지배의 목적은 우리의 점진적인 발달 속에서 증명된다. 결국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모든 ‘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목표는 ‘그’의 계획에 따라서 성취될 것이다.

올바른 방향 내에서 두가지 발달의 길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 우리로 하여금 억지로 도망치도록 하는 고통의 길- 우리는 목표를 보지 못한 채 고통으로 부터 도망칠 것을 강요당한다. 이 길은 “무의식적 진화” 혹은 “고통의 길”이라고 불린다.
  • 카발라의 방법을 따라서 의식적이고 고통없는 신속한 영적 발달의 길- 이 길은 원하는 결과를 재빨리 얻을 수 있도록 촉진하는 길이다.

 

카발라의 방법을 이용하는 모든 발달의 법칙들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선과 악을 인지하고, 그리하여 악의 인식를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리는 영적 법칙들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들의 모든 악을 제거할 수 있다. 발달 내의 변화에 따라 우리는 더 깊은 악의 인식, 혹은 더 얕은 악의 인식을 갖게 되고, 이는 그 악을 제거 하려는 욕구가 더 강해지거나 더 약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모든 악의 근원은 우리의 이기주의에 있다. 그 이기주의는 우리에게 오직 ‘선’만을 베푸려하는 창조주의 본질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즐겁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이 ‘그’로부터 몸소 오기 때문에 창조주에게 가깝다는 것은 기쁨으로 인식되고,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정도는 이에 준하는 고통으로 인식된다.

창조주가 이기주의를 미워하기 때문에 인간들 또한 그들 발달의 정도에 따라 그것을 혐오한다. 이기주의를 대하는 자세는 광범위하다. 영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사람은 이기주의를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 아무 제한없이 (도둑질과 살인에까지  당당하게) 그것을 이용한다. 이보다 더 발달된 사람은 이기주의의 대담한 과시를 부끄럽게 여기는 한편 영적으로 발달된 사람은 이기주의를 향해 극도의 불쾌감과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므로 본문을 시작하면서 던졌던 물음들에 대한 답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 카발라의 본질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아무런 고통없이, 긍정적인 방법으로 발달의 마지막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 카발라의 목적은 최후의 수준을 달성하는 것으로, 이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행한 영적 수행에 좌우된다.
  • 카발라는 그들의 복지를 위해 피조물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아 완성에 이르기 위한 가르침으로서 주어진 것이다.
 

카발라란 무엇인가?

카발라 과학은 고대 바빌론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그 과학이 출현한지 4000년이 넘도록 사실상 인류로부터 숨겨져 왔다. 이렇게 카발라를 숨긴 것이 지금껏 그에 대한 끊임없는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뉴턴, 레이브니즈, 피코 델라, 미란 돌라와 같은 여러 국가의 명성있는 과학자들, 철학자들이 카발라 과학을 연구했고 이해하려 시도 하였지만, 카발라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오늘날까지 단지 몇 명에 불과하다.

카발라 과학은 우리 세상을 거론 하지 않으므로 그 본질은 사람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지난 수 천 년간 인류는 마법, 저주, 심지어 기적  등- 진정한 카발라 과학만 제외한 모든 것-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것들을 “카발라”라는 이름 아래 접해 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인지가 불가능하며, 경험되지 않은 실체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카발라 과학에 대한 일반적 이해가 사 천 년이 넘도록 오해와 오역으로 혼란에 빠져있었으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카발라 과학이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카발리스트 예후다 아쉴락은 “카발라 지혜의 본질” 이라는 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카발라를 정의 한다.

이 지혜는 원인과 결과라는 법칙에 따라 내려오는 근본 이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카발라는 이러한 불변의 고정된 법칙 속에서 단 하나의 숭고한 목적-이 세상 내의 피조물들에게 창조주의 뜻을 밝힌다- 을 이루기 위해 그 방법을 고안하는 지혜인 것이다.

이의 과학적 정의는 복잡하고 성가실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창조주 혹은 어떤 상위의 힘이 존재하여, 바로 여기서 모든 지배적인 힘들이 우리 세상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힘들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중요치 않다.

우리는 여기 우리 세상에 존재하고, 우리가 “창조주”라고 부르는 어떤 상위의 힘에 의해 창조되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중력, 전자기, 생각의 힘과 같은 다양한 힘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힘들이 우리도 모르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힘을 “창조주”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힘은 이 세상의 모든 힘의 총체이며, 지배적인 힘의 선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있다.

카발라 과학은 전통적 과학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흐솜(Machsom: 우리 내면의 영적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내적 장벽)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연구한다.

카발리스트 예후다 아쉴락이 그의 저서에서 정의하였듯, 정확한 법칙에 따라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힘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이같은 법칙들은 이미 정해져 있고, 절대적이며, 보편적이다. 즉, 그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자연 속의 그 근원적이고, 지배적인 힘을 발견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설정되어 있다는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어떤 사람이 더 높은 수준에서 하강하는 법칙에 근거하여 그러한 힘에 대해 연구하고, 그가 되올라 가야할 모든 세계를 파악하여, 마침내 영원의 세계에 이를 때까지 그 사람은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사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상위의 힘을 알려는 욕구가 나타나는 단계에 이를 때까지 이 세상에 태어나기를 끊임없이 거듭할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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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지혜 카발라: 더 평화로운 삶을 위한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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